어떤 사랑은 사랑이 되기 위해 자신이 아끼던 마음을 죽이기도 하니까: 봄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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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장편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어느 초여름에 베어 먹은 복숭아의 떫은 단맛이 어떻게 엄마의 몸 안에 퍼져갔는지, 배를 앓던 날의 베개 너머 꿈의 입구는 어떤 세상을 열어주었는지, 첫딸을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뜨겁게 눈물을 쏟아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그 안의 기록물과 전시품, 서적과 함께 사라지듯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안고 이 지상에서의 자취를 거두어간다고 생각하면⋯⋯.
허무했다.
박은정 시집
아사코의 거짓말

누군가의 손이 이마에 얹힌 시간과
짙푸른 바다의 고요를 보여 줬던 친구와
태풍 아래 안부를 적어 보내는 사람들
한때
그들은 죽지 않는 천사이자 영원이자
단 한 줄의 지워지지 않는 맹세였을 것이다
이제니 산문집
새벽과 음악

어느 새벽 너는 조금 외롭고 지치고 힘든 것 같다. 너는 그만 생을 놓고 싶은 것 같고, 삶이 어떻게 흘러가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표류하는 마음으로 너는 살아왔다. 너는 네 마음을 물들이는 어둡고 무거운 기운에 맞서 은밀히 분투해왔고 그것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것. 삶의 의미 없음. 단순히 무의미함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너는 허상과 허망함 속에서. 사소하고도 거대한 존재들이 네 곁에서 네가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이 음악 속에서 느낀다.
백수린 단편소설집
폴링 인 폴

나는 다만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열렬히 사랑했던 것뿐이니까. 어쩌면 당신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사랑을 지속시켜주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은색 비늘을 반짝이며 쏟아지듯 헤엄쳐 다니는 정어리 떼 앞에 세 번째로 멈춰 설 때까지도 당신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신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지.
알고는 있지만, 있잖아, 아주 가끔은 가슴이 아파. 때로는 당신이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이하진 중편 소설
마지막 증명

그 빛의 궤적 속에서 바라던 이해에 닿아, 당신은 내가 당신을 포기하길 바랐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끝에 존재할 당신은 너무 외롭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답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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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권의 책,
모두 여성 작가의 신작 속 구절이야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책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
책과 함께 포근한 봄날이길
제목은 박은정의 시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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