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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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문종 세조 제외..!
짤은 걍 구글링 역할이랑 안맞음
1. 안평대군 이용 / 계유정난 겪음 (세조에게 사사)
세종과 소헌왕후의 3남

서예,시,그림 셋 다 잘해 삼절이라 불렸음
특히 명필로 명나라 황제까지 안평대군을 알 정도.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안평대군한테 글을 써달라고 할 정도였음.
서예로는 그 당시 한석봉과 다툴 정도.

연년생 세조와는 그 당시 최고의 라이벌이었음.
세종이 수양과 안평은 궁궐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게 함.
문종 시절 형의 밑에서 실력자로 여러 모로 형의 치세를 도움.
단종 즉위 이후로 황보인, 김종서 등 문신들과도 친했으며 행정에서 인사를 맡아 문종 아래 조정의 실력자로 떠오름.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자마자 바로 찍혀서 36살의 나이에 사사당함.
세종이 요절한 막내동생 성녕대군의 양자로 들여보냈기 때문에 양어머니인 성녕대군의 부인 삼한국대부인 성씨는
함께 연루되어 귀양 가서 죽음.
세조는 양어머니 성씨 가문 또한 노비로 멸문지화 하면서 아작냄.
안평대군의 아내와 딸 며느리 모두 노비가 되었으며 아들들 모두 사사당했기 때문에 후계가 끊김.
안평대군이 남긴 그림과 글 모두 세조가 다 불태워버려서 남는 작품이 몇개 없음...
숙종때 복권됨.
2. 임영대군 이구 / 계유정난 겪음 (세조 편)
세종과 소헌왕후의 4남

수양대군이랑 친했으며 승마 무술에 능했다고 함
세종이 매우 예뻐했음.
but he is... 여자 겁나 좋아해서 세종 속 좀 썩임.
세종이 양녕 형님 그대로 닮았다고 디스할 정도.....
세종이 이 버릇 고쳐보겠다고 대군 직첩 몇번이나 박탈하고 궁궐에 가둬도 봤지만 안고쳐짐^^
그래도 세종과 문종이 무예 관련 일을 많이 맡김 총통 화차 등을 제작함.
수양대군 편에 서서 대군들 중에 유일하게 50살까지 잘 먹고 세조 총애 받으면서 권력 누리고 잘 삶.
아이러니하게 유언은 아홉 아들들한테 서로 싸우지 말라 였음...
후손들도 영의정까지 오를 정도로 잘 먹고 잘삼. 대대손손 잘삼.
3. 광평대군 이여 / 계유정난 안겪음(요절)
세종과 소현왕후의 5남

1425년 생
(문종이랑 11살 차이, 세조랑 8살 차이)
12살에 좌의정의 딸과 혼인함
세종을 닮아 공부를 무척 잘해
사서삼경에 능통했고 국어, 음악, 산수 못하는게 없었음
글씨도 잘썼고 활쏘기 격구 등 운동도 잘해 세종이 매우 매우 예뻐했다고 함
특히 잘생긴 얼굴로 유명했다고 함 a.k.a 엄친아
다만 20살에 아들 돌도 보지 못하고 요절함
야사에는 이런 얘기가 있음 (정사 x 재미o)
세종이 관상가를 불러 대군들의 관상을 봄

관상가 曰 : 다섯째 대군께서는 용모 수려하시고 단정하시어 뛰어난 재질과 복을 갖추었습니다.
다만....굶어서 돌아가실 상입니다.
세종 曰 : 껄껄껄 한 나라의 왕자가 어찌 굶어서 죽는단 말이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찝찝하니 광평이에게는 더 큰 땅을 하사하여야 겠다)
전하! 광평대군께서....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돌아가셨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야사일 뿐.
광평대군은 호환마마인 창진으로 죽었음.
세종은 창진을 치료하기 위해서 별 수를 다 써봤음.
창진은 동생인 성녕대군을 12살때 죽게 만들고
아들 수양대군, 금성대군, 손자 단종을 반쯤 죽였다 살려놨던 무서운 병이였음...
세종은 광평대군을 살리기 위해 탕약 치료, 제사 등 안해본게 없었음.
밥도 굶고 잠도 안자고 별 수를 다 써봄.
민간 신앙인 영추문을 열어 창진을 물리치고자 했고
제사를 열어 신에게 기도까지 했지만 광평대군은 사망함.
세종은 3일동안 정사도 돌보지 않을 만큼 매우 슬퍼했다고함
다만 5개월 된 아기 영순군이 아들을 낳고 장남에 장남에 꼬리를 물어 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
세종은 영순군을 궁궐로 불러 단종과 함께 자라게 함
5. 금성대군 이유 / 계유정난 겪음 (세조에게 사사)
세종과 소헌왕후의 6남

광평대군과 연년생 형제. 둘은 모두 단종 편에 섬.
광평대군을 죽인 창진에 걸렸지만 세종이 일도 제쳐두고 내의원 보내고 난리쳐서 살아남.
세종이 병에 걸렸을 때 그의 사가에서 머물기도 함.
단종과는 매우 친한 삼촌 조카 사이였음.
단종이 왕위 자리에 올랐을 때 단종에게 물품을 받으면서 자신을 보필해줄것을 부탁 받음.
세조는 그를 살려주었으나 단종 복위 운동에 걸려 세조에게 사사당함.
시신 또한 수습하지 못해 묘가 없음.
안평대군 아들들과는 다르게 그의 자손들은 노비가 되었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음.
5. 평원대군 이임 / 계유정난 안겪음 (요절)
세종과 소헌왕후의 7남

.
평소에 조용하고 경서 연구하는걸 좋아했다고 함.
공부도 열심히 하고 겸손하고 형제들과 모두 사이가 좋았음.
다만 형 광평대군이 죽은 다음에 한달만에 19살에 천연두로 죽음.
6. 영응대군 이염 / 계유정난 겪음 (중립)
세종과 소헌왕후의 8남

소헌왕후가 무려 거의 40에 낳은 매우 늦둥이...막냉이...
세종이 얼마나 예뻐했는지 실록에서도 영응대군 편애가 기록되있음.
형제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세종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함.
세종 말년에 아팠을때 막내의 집에서 기거했고 영응대군의 집에서 죽었음.
문종 세조 뿐만 아니라 온 형제들이 영응대군을 사랑했고 온갖 진귀한 선물은 다 받음.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며 세조의 비호 아래 33살때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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